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최근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여론조사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여론조사(10월 26~28일 18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를 보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과(功過)를 묻는 질문에 '잘한 일이 많다'는 응답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62%를 얻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61%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요즘 논란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6%로 최하위로 평가됐고, 얼마전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 보다 조금 높은 21%를 받았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는 한국인들은 김대중ㆍ노무현 ㆍ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낮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어느 대선 보다 격렬하게 진행되는 2021년 대선 정국에 전직 대통령들이 소환되고 있다. 여야 후보들이 전직 대통령들을 캠페인에 소환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정 비전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과거 대선의 주자들 처럼 독자적인 정치세력과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ㆍ김대중 등 자기 세력이 확고했던 정치인들은 전직 대통령의 후광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선 정국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은 박정희ㆍ전두환ㆍ김대중ㆍ노무현 등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이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의 길을 열었던 것 처럼, 이재명 정부는 탈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의 회복'을 이재명 정부의 국정 담론으로 제시하며, 기존의 김대중ㆍ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성장의 아이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가한 것이다. 지난 1992년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개혁ㆍ개방을 설파했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연상시키는 연설이다. 그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영남ㆍ중도의 확장성을 내다본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두가지 분열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비서진들이 다른 길을 가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 진영에 가담한 박주선ㆍ김동철ㆍ장성민씨 등은 최근 김대중 정신을 윤 후보가 잘 추진할 것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곤경에 처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구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반면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진 11인은 지난 9월 23일 광주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정책을 가장 잘 계승할 대선 후보는 이재명 후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호남인들은 어느쪽이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따르는 것인지 잘 판단할 것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소환한 이후 호남의 반발과 지지율 급락 등 봉변에 가까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부산 해운대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은 그는 변명을 거듭하다 마지못해 사과했으나, 후유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낙연 전 총리의 '박근혜 사면론'에 버금가는 실언이다. '국민 밉상'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옹호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모르는 정치 수준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조롱섞인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여론은 인기를 쫓아가는 속성이 있다. 정치판에 인기 연예인들을 동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역대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은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기반이 약한 후보들이 대결하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취약한 지지기반과 인기를 전직 대통령에게서 찾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면에서 이재명 후보는 성공한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덕을 본 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실패한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궁지에 몰린 측면이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여전히 한국 정치와 함께 하고 있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 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청연구원,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국기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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