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신인상에 제주 문경수...“음지 비추는 한줄기 빛 되고파”

“시가 밥 한 술 주지 않지만,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국내 대표 문인 단체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신진 작가 발굴 공모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서 올해는 유일하게 단 한 명이 시상식 단상에 올랐다. 시, 소설, 평론 세 부문에서 시만 당선자를 배출했는데 주인공은 바로 제주의 30세 청년 시인 문경수다.

문경수 시인은 ‘미장’ 외 4편으로 제18회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등단을 꿈꾸는 전국 신인 63명 가운데 당당히 경쟁을 뚫고 이뤄낸 성과다.
▲ 올해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제주 청년 문경수. ⓒ제주의소리
▲ 올해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제주 청년 문경수. ⓒ제주의소리

당선작 ‘미장’은 미로를 만드는 아버지와 그 안에서 틀을 깨부수는 아들의 관계를 그려냈다. 평행선을 그리는 듯 서로 얽매이는 부자 관계의 고유한 감정을 부수고 메우는 작업으로 빗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머지 작품에서도 아파트 복도를 청소하는 어머니(작품명 아파트),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아버지(알프라낙스) 같은 ‘가족 소재’가 등장한다. 자칭,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 정의를 이야기 하지만, 껌 파는 행상인의 작은 요구를 외면하는 이중적인 모습(양면코트)도 꼬집는다.

지난 10월 26일 열린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김태선 문학평론가는 “문경수의 작품은 투박하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이야기로 세계와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현실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당선자의 행보에 기대 걸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건필을 기원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시와 글쓰기가 멋있어서 펜을 잡았다는 문경수 시인은 “내면 이상의 새로운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전히 취업을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 가운데 하나이지만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서 시를 쓰겠다는 성숙한 다짐도 내비쳤다.

다음은 5일 [제주의소리]와 가진 인터뷰 전문.

Q. 시인 등단을 축하한다. 시와 맺은 첫 인연은 언제인가?

A. 2012년 4월 부사관으로 임관하고 나서 처음 시를 읽었다. 시의 매력에 푹 빠져서 시집 읽는 친구들에게 어떤 작품이 좋은지 물어보고, 나중에는 스스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니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참 멋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책과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컸다. 20살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오고 있다. 일기 쓰기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혔다. 처음에는 일일이 손으로 썼지만, 지금은 PC로 작성한다.

Q. 공모전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했나?

A. 지난해 중앙지 한 곳이 여는 신춘문예에 참여했다가 떨어졌다.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은 시 테크닉 보다 자기의 내면 목소리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고 얼핏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투박하지만 담담하게 써본 것들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내볼까 고민하다가 기대 없이 제출했는데 덜컥 당선됐다. 심사위원들이 솔직하면서 묵직한 내 목소리를 잘 봐준 것 같다. 당선 소식을 알려준 한국작가회의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웃음)

Q. 당선작들을 보면 가족 간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사회의 이면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면?

A.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쓴 ‘인간과 상징’을 비롯해 최근 꿈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내면에 집중했다. ‘인간과 상징’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과 말이 유년시절이나 내가 고민해왔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가족 이야기, 사람 사는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Q. ‘미장’에서는 아버지는 계속해서 미로를 만든다. ‘아파트’에서 어머니는 아파트 계단과 복도를 청소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본인과 본인 가족인가?

A. 그렇다. 두 분 모두 시와 다소 거리가 있는 평범한 분들이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는 아파트 청소 일을 하신다. 가족과 여러 갈등을 겪었고 한편으로는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보려고 애쓰며 조금 힘들었는데, 시를 쓰면서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단순히 등단을 목표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편으로 썼는데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현재 제주대학교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학교 청소노동자를 보면서 어머니 모습이 겹쳐보였다.

Q. 당선 소식에 가족들의 반응은?

A. 아직 알리지 않았다. 취업도 안했는데 글을 쓴다고 하면 걱정 하실까봐 조용히 있었다. 서울에서 열린 시상식에도 놀러간다고 말하고 다녀왔다. 취업하고 부모님이 안심할 만큼 안정될 때 활동을 알려도 늦지 않겠다.

Q. 기사를 보고 아시면 어떻게 하나?

A. ...모르겠다. (웃음)

Q. 등단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누군가?

A. 함께 책 읽고 이야기하며 격려해준 친구 이민우, 배준범에게 고맙다. 장이지 교수(제주대 국어국문학과)님도 감사드린다. 현택훈 시인과 라음 동인 회원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 혼자 시를 쓰던 시절과 달리 라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읽는 사람을 의식하며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썼고 결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잠시 제주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근무하면서 익힌 글쓰기 방법도 큰 도움이 됐다.

Q. 앞으로 어떤 시, 글을 쓰고 싶나.

A. 덜 부끄럽게 살고 싶다. 시를 쓰면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감정과 위선을 많이 느낀다. 그런 감정이 나를 채찍질 하는 채찍이 됐고,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가 됐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읽는 사람이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내면 이상의 새로운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적은 노력으로 등단했기에 상을 받아도 되는지 부담이 크다. 압박을 간직하면서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는 음지에서 있는 것을 양지로 끌어내는 힘이 있다고 본다. 시가 밥 한 술 주지 않지만,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나.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일단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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