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앞두고 일자리 찾기···"국내 받아주는 곳 없어"
中 가기 직전 한전공대 영입 "5년 단위 연장, 감개무량"
임지순 전 서울대 교수도 정년 앞두고 POSTECH 부임
이공계대 A 교수 "인재 빼가기?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어"

국내 석학들이 정년에 막혀 갈 곳을 잃었다. 국내 대학 등에 오퍼를 넣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년을 맞이했거나 앞두고 있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인재 유출, 인재 영입에 걸림돌이 되는 국내 정년 제도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석학들이 정년에 막혀 갈 곳을 잃었다. 국내 대학 등에 오퍼를 넣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년을 맞이했거나 앞두고 있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인재 유출, 인재 영입에 걸림돌이 되는 국내 정년 제도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최초 상위 0.01% 피인용 우수 연구자에 이름을 올리며 노벨화학상 수상 예측 후보로 거론되던 유룡 교수가 지난 3월 1일자로 기존 KAIST에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이하 한전공대)로 소속을 옮겼다. 오는 11월까지 연구장비 등 한전공대가 있는 나주로 모든 이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유는 '정년에 막힌 연구중단' 때문이다. 
본지 취재 결과 작년 정년을 맞이한 유룡 KAIST 명예교수는 퇴직하기 몇 해 전부터 퇴직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부터 KAIST 교수를, 2012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연구단 단장으로 재직한 그는 IBS 정년이 만 65세인 이유로 올해 내 새 본거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로 추대받으며 5년간 더 KAIST에 머무를 수 있게 됐지만 규정상 명예교수직은 연구실만을 제공, 별도의 랩은 두지 못한다는 점이 유 교수에겐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명예교수는 보직일 뿐, 실제 내 랩과 대학원생들은 두지 못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젊은 교수들과의 공동연구밖에 길이 없다"며 "이후 국내 대학 등에 지속적으로 오퍼를 넣었지만 정년을 가장 큰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중국의 한 학술원에서 요청이 와 외국인 원사로 가기로 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화학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분야 관련 약 30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4만5000여편의 학술지에 그의 성과가 인용된 바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한 우리나라 최초 상위 0.01% 피인용 우수 연구자에 이름을 올리며 노벨화학상 수상 예측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중국으로 소속을 옮기려 했던 점은 막대한 인재 유출로 보인다. 

중국 학술원과의 마지막 사인만을 남겨두고 국내 한 대학에서 임용을 원한다는 연락이 왔다. 한전공대다. 한전공대는 석학급 석좌교수들에 한해 정년퇴직 이후에도 별도의 평가를 거쳐 5년 단위로 정년이 자동 연장된다. 강좌 개설은 물론, 개인 랩과 대학원생들도 둘 수 있다. '기한 없는 연구 자율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학생들을 앞으로도 계속 지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할 뿐이다. 대부분 나이가 든 교수들은 일을 안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 민폐만 끼친다는 선입견이 있다.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연구 지속성을 두고선 그런 인식이 안타깝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정년 문제에 때 없는 '일자리 찾기'에 나선 건 유 교수 뿐만이 아니다. 한국 물리학자 최초로 미국과학학술원(NAS) 외국인 종신회원으로 추대받으며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임지순 전 서울대 교수도 2016년 정년을 앞두고 POSTECH 석학교수로 부임,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참고로 POSTECH은 석학교수에 한해 정년퇴직 이후 5년간 실험실을 제공하고 있다. 임 교수도 당시 "연구 지속성을 위해 고심 끝에 POSTECH을 택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 인재 빼가기? "마냥 비판할 수는···"

국내 대학 정년 문제는 항상 과학기술계 뜨거운 감자로 거론돼왔다. 65세로 제한되고 있는 정년 제도가 인재 유출은 물론, 인재 유치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대부분의 외국 대학에선 종신직을 택하고 있다. 능력만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연구 연속성을 부여하는 원리다.


한 이공계대 A 교수는 "해외 석학이 한국 대학으로 옮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정년"이라며 "보통 교수들의 평균 나이를 감안했을 때, 그들은 한국으로 올 시 대부분 10년 내로는 은퇴해야 한다. 그럼 누가 오고 싶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한전공대는 최근 유룡 교수를 포함해 박성주 전 GIST(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 박진호 전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 문승일 전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김종권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 교수, 강병남 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등을 채용하며 '교수 빼가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한전공대가 유명 교수들을 막대한 연봉으로 스카우트해가며 연구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해외 트랜드를 따른 일종의 종신직 도입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물론 5년 단위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견은 갈리겠지만, 순수한 연구 열정이 있는 교수들에겐 굉장한 기회"라고 평했다.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존 굿 이너프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교수는 1922년생으로 올해 만 100살을 맞이했다. 현재까지도 개인 랩에 학생들을 지도하며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 교수는 "최근 현지에 있는 한 제자를 통해 굿 이너프 교수의 100세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같은 과학자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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