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패러사이트”

나지막한 ‘제인 폰다’의 목소리에 환호성이 터졌다. 2020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은 지켜보는 내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였다. 한국 영화가 세계인이 주목하는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도 놀라운 상황이지 않은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의 영예까지 안는 전율의 순간을 무려 네 차례나 경험하게 해 준 것이다. 한국 영화 역사에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새겨지던 장면을 나는 감동적인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기억하고 있다.

예상을 뒤엎고 파란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매번 유쾌했다. 표정, 손짓, 말투 하나하나에 꿈이라도 꾸는 듯 어쩔 줄 모르는 기쁨과 놀라움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눈치 보느라 차오르는 감격을 경직된 표정에 내리누르지도 예의를 차린다고 틀에 박힌 말로 겸손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문턱이랄 것도 없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로컬 영화제의 인식을 무색하게 만든 글로벌한 자신감 자체를 보여주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주제를 자신만의 유머와 풍자로 솜씨 있게 주무를 줄 아는, 역시 ‘봉준호답다.’

봉준호를 봉준호답다라니. 매 영화마다 그렇게 느껴왔다. 다수의 시선에 타협하지도 대담한 시도를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 기괴하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답게 만든 영화, 자기다움이 증명해낸 쾌거에 당당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랴.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자기다움을 오롯이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희망, 열정이 확고한 사람은 자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충만하지 않은가. 가장 익숙한 자신을 쉼 없이 들여다보고 살피던 시절에는 스스로가 마냥 새롭고 신선했다. 나잇값에 작아지고 편견에 치이고 관습에 걸려 넘어지다 보면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나답지 않은 모양새에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이 조명한 불확실한 현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원하는 바를 찾아 매진한다 해도 인정받지 못할까, 성공하지 못할까 하는 불안에 자기다움은 방향을 상실하기 일쑤다. 그때마다 낯익던 내가 낯설게 다가오더라는 말이다.

감독상을 움켜 쥔 봉준호 감독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지혜와 영감을 나누어 준 친애하는 경쟁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다. 꿈을 좇던 시절부터 그가 마음을 다해 믿어 왔다는 거장의 말은 자기다움의 가치를 톺아보게 한다. 남과 다른 가치관과 감정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표현한다거나 사회적 편견이나 획일적인 사고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선다고 해서 자기다움이 완성되는 것일까. 자기만족, 자아도취의 부정적 뉘앙스인 허세로 보이지 않을까하는 편견과 경계의 1인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싶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만족스러운 자기 확신의 힘이 바탕에 존재한다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창의적인 자기다움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검은 수트 차림에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내로라하는 영화계의 인사들을 향해 번쩍 들어 올린 황금빛 트로피. 멋쩍은 미소로 에둘렀지만 허를 찌르는 한국어 수상 소감. 영화에 관한 소신을 분명하게 전하는 상기된 목소리. 봉준호라는 세 글자는 아카데미의 스포트라이트보다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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