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간 신묘한 수석 수집 보존한 배동찬 전국수석동호인협회 회장

▲ 배동천 회장
▲ 배동천 회장

“인간은 100년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지만, 수석(壽石)은 수명이 무한해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한평생을 모은 수석이기에 개인이 보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정부나 지방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예술로서의 가치를 판단해 박물관 등에 영구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천 여점의 희귀한 수석(壽石) 작품을 20대부터 50여 년간을 수집해 온 고희를 넘긴 한 수집가의 수석 사랑이 눈길을 끈다.

적게는 100만 원대부터 많게는 80억 원대의 수석을 보존하고 있는 배동천(73) 전국수석동호인협회 회장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로에 있는 집 안팎에는 수천 점의 수석을 수집해 보존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보존공간인 춘천 전시실에서 배 회장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과거 유명 코미디언인 고 배삼룡 씨가 그의 막내 친삼촌이고, 소설가 이외수 작가와는 어릴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날 그와의 만남에도 소설가 이외수 작가도 함께 했다.

먼저 그는 20대부터 매력을 느껴, 국내외로 수석을 캐려 다녔다고 말문을 열었다.

“20대인 1970년 대부터 수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당시 한 때 주먹자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형사를 피해 다닌 곳이 산골짜기였다. 산에서 돌을 만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수석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돌에 미쳐 44개국을 다녔다.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 페루, 온두라스, 파나마 등 남미는 다 다녔다. 25년 동안 혼자서 다녔다. 이제 나이가 들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지자체 등에서 예산을 투입해, 여러 사람이 공적으로 영구히 볼 수 있는 공간인 박물관을 지어 보존하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기자(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와 배동천 회장

배 회장의 집 안팎에는 신기하고 희귀한 돌로 가득 차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희귀석 수천 점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돌의 받침대인 좌대도 중요하다. 수석을 지탱한 좌대는 전부 내가 만들었다. 단단한 느티나무 등으로 만들었다. 실내 진열장에는 한 작품이 들어가야 하는데 작품이 많고 공간이 좁다보니 진열장 내 서 너 개의 작품을 진열하고 있기도 하다. 수석이 많다보니 구멍가게 과자 놓듯이 해놓아 작품 감상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집중을 하려면 진열장 내 한 작품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놓을 자리가 없어 바깥에 내놓은 것은 아니다. 바깥에 전시한 작품들은 작품이 나빠서가 아니다. 수석의 특성상 야외에 놓을 돌이 있고 실내에 보관할 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밖에 전시한 돌을 보고 질이 떨어진 것으로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돌을 아끼고 좋아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돌을 보는 시각이 매우 다르다고 전했다. 평생의 돌 수집이 취미여서 돌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70년대 돌을 수집하면서 한때 도자기와 동양화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당시 도자기와 동양화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도자기와 그림을 자제하면서 돌에만 취미를 갖고 수집하게 됐다. 돌에 대한 취미가 없었으면 아직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돌을 하면서 신체적인 건강도 좋아졌지만 정신적·정서적으로도 안정됐다. 수석을 접하면서 과거에 비해서는 많은 수양을 했다. 이제는 남을 위할 수도 있고, 막말로 누가 한대 때리더라도 참고 견딜 여유가 생겼다. 다 돌 때문에 온 나의 수양이다. 만약에 이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모아놓은 수석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봤는데, 바로 수석을 한군데로 모아 박물관 같은 공익적인 공간을 만들었으면 하는 발상을 해봤다.”

실외 수석

수석의 모체가 산같이 생긴 모양의 ‘산수경석’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집 안팎의 전시공간에는 산수경석 중 물이 담긴 호수석(담수석), 산봉우리와 평야가 있는 평온석, 멀리보이는 산인 원산형, 가까이 산이 보여 변화가 있는 근산형, 산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폭포석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사람, 동물, 집 등 물체를 닮은 형상석(물형석), 돌에 글씨가 새겨진 사문석, 무늬가 형성된 문양석도 볼 수 있다. 다들 인간이 손을 가하지 않은 자연석들이다. 수석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터치가 들어가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이 새겨있는 화문석을 캐면 울퉁불퉁해 무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아야(마석) 무늬가 선명히 나오기 때문이다. 

“수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위적인 터치가 들어가면 안 된다. 내가 모은 돌의 특징은 기름을 매기지 않는다. 돌에 색깔을 검었게 내기위해 기름을 매기는데 나는 기름을 매기지 않는다. 자연그대로 갖고 와 물로 씻어 그대로 받침대에 앉힌다. 그것을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다. 받침대 역시도 채색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무 색깔 그대로 나오게 하여 자연스럽게 만든다. 자연은 자연으로 시작해 자연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배동천 회장

그럼 배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수석은 뭘까.

“앞서 밝혔지만 일반적으로 수석은 갈든지 인위적으로 만들면 수석이 아니다. 비구상같이 돌에 메시지가 담겨 있는 추상석이 있다. 어떤 물체를 닮지는 않았는데 뭔가의 메시지(상징성)를 던져주는 돌이다. 그래서 나는 추상석을 가장 좋아한다. 돌을 오래하다 보면 형상석이나 문양석보다도 추상석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옛날 화가들 중 실존파(사실파)들이 비구상으로 돌아가듯이 수석도 오래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가 수집한 수석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칠레에서 캐온 80억 상당의 ‘청록산수’이다. 이 작품은 가로(장) 3m 20cm, 높이(고) 68cm, 넓이(폭) 1m 67cm이고, 1톤 이상의 무게에다, 보기 드문 녹색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25억을 제시하며 팔라고 했다. 아내가 팔자고 했지만 내 청춘을 다 바친 작품이기에 팔지 않았다. 80억 정도면 생각해 보려고 했다. 칠레 야외에서 두 달간 라면을 먹고, 엎드려 자면서 고생을 해 캐낸 돌이다. 이것은 일생일석이다. 자기생애에 돌이 딱 한 개라는 의미이다. 나의 대표작이기 때문에 팔지 않았다.”

80억 대라고 밝힌 '청록산수'

이어 그는 칠레 산티에고에서 400여 km 떨어진 ‘꾸리오’라는 지역, 산 계곡에서 캐온 ‘청록산수’의 발견과 이동경로를 말하기도 했다.

“95년 7월이었다. 우리나라와 반대이기 때문에 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꾸리오라는 지역의 산 계곡을 다녔는데, 3/2가 노출된 위는 녹색이고 바닥은 하얀색인 돌을 발견했다. 정말 희귀하고 보기 드문 산수경석 중의 명석이었다. 평생 돌을 찾아다녔지만 녹색 돌은 처음이었다. 도로에서 2.8km 지점이었다. 그곳 현지에서 인부 20여명을 불러 캐는 작업을 했다. 상처가 나면 되지 않기에 곡괭이나 삽을 쓰지 않았다. 뾰족하게 막대기를 만들어 모래와 돌을 긁어냈다. 그곳은 모레와 돌만 있기 때문이다. 막대기로 긁고 손으로 돌을 빼고 그래서 캐낸 돌이다. 9박 10일 일정으로 갔는데 한국까지 오는데 58일이 걸렸다.”

그는 돌을 캐고 차도로 내려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저녁 텐트에 있으면 푸마 무리들이 라면 등 음식 냄새를 맡고 나타나 위험한 일도 있었다고도 했다.

“돌을 캐고 옮기는 과정에서 텐트에서 생활을 했는데, 밤마다 냄새를 맡고 푸마가 무리를 지어 내려 와 주변을 빙빙 돌았다. 쇠망치와 가스를 켜면서 탕탕 때리니 도망갔다. 이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20여명의 인부들이 나무를 잘라 레일모양으로 만들어 돌을 실어 끌고 내려왔다. 어떤 날은 1m도 가지 못했고, 보통 날은 200~300m정도 갔다. 최고 많이 가는 날이 500m정도였다. 계곡에서 2,8km에 있는 도로까지 옮기는 과정이 너무 힘겨웠다. 그리고 산티에고로 나가 중장비를 불러와 여기에 실어 항만으로 향했다. 수입 수출 절차를 밟고 통관료를 내고 국내까지 가지고 온 돌이다. 고생 무지하게 한 돌이다. 그때가 40대 중후반이었다.”

실내수석

배 회장은 수석에 대해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청록산수’ 같은 딱 떨어진 작품이 있어, 흐뭇하다”고도 했다.

“그림을 수집한 사람은 유명한 그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낫지, 이름 없는 작품 100개를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는가. 마음에 든 한 개의 작품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들으면 건방진 것 같지만 대한민국에서 수석에 대해 일인자라고 자부한다. 고인이 됐지만 돌을 좋아한 김일두 공안 검사, 박두진 시인 등과 함께 내가 20대 때 어울려 돌을 수집했다. 좋은 수석은 3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색채로 말하면 3원색(빨강 파랑 노랑)이 있듯이 말이다. 3대 요소가 맞아야 수석으로 인정을 한다. 먼저 석질이다. 돌에 질이다. 그다음은 강도이다. 돌이 강한가 약하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세 번 째는 돌의 변화(모양)이다. 그래서 이무 것이나 수석이라고 하면 안 된다. 수석에 대해 가나다라도 모른 사람들이 언론에 나와 수석을 말하는데 그것은 수준 미달이다.”

그는 자신이 모아둔 신묘한 수석의 보존의미에 대해 언급했다.

“내가 모아둔 신묘한 수석에는 나의 철학과 사상과 인생이 깃들어 있다. 수석(돌)은 우주의 축소판이다. 돌은 일반인에게는 무생명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생명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배 회장은 자신이 만든 한자성어로 ‘수석(돌)’을 정의했다. 바로 ‘담석체련 완석수심(探石体鍊 玩石修心)’이었다. 즉 ‘돌을 찾으면서 몸을 단련하고, 돌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닦아라’라는 의미이다.

또한 그는 "돌에 기운(氣)과 돌의 향기(香)와 그 돌의 소리(音)가 나의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소설가 이외수 작가가 과거 출판한 소설 <해우석>은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일만의 근심을 해결해주는 돌을 찾아다닌 인간의 얘기를 담고 있다.

기자(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와 배동천 회장, 소설가 이외수 작가이다.

이날 배 회장과 함께 대화를 나눈 소설가 이외수 작가도 온 생애를 바쳐 모은 수석에 대해 공적인 활용 방법을 언급했다.

“가급적이면, 이런 보물급 작품들을 개인이 관리하게 되면 극소수만이 보게 되고, 수석에 대한 가치라든가 예술에 대한 인식이 축소된다. 이것을 정부나 지방정부, 지자체 등이 공적으로 관리를 하게 되면 상당히 합리적이면서도 활용도가 높아진다. 이제 개인이 관리하는 한계를 넘어섰다. 작품 숫자로 보거나 작품의 질로 보거나 그렇다. 한 공간에 한 개가 있어야 할 작품들이 한 공간에 여러 작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보는 이가 집중해 감상하지 못하고 산만해지고 멋으로도 덜하다. 이 정도 규모이면 실제로 거의 온 생애가 집약돼 있는 것이다. 이제 강원도는 경치만 팔아먹고 살 생각을 버려야한다. 문화예술과 접목해 그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도나 지방정부, 시가 관장해 투자하고 박물관을 세우면,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와 감탄하고 감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의 속마음이나 가치를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동천 전국수석동호인협회 회장은 대한당구연맹회장단협의회 의장, 대한체육회 강원도당구연맹회장, (사)해병헌병전우회 강원지회장, 유네스코 강원도협회 이사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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