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최근 일부 과격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촉발된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하는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최악의 국면인 것은 물론 2000년 6.15 선언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상황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북한 최고 지도부가 나서 직접 군사행동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또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리선권 외무상,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대남 라인이 총출동해 전방위 대남 공격에 나섰다.

이는 북한 당국이 현 정부 들어 지속된 대남 유화국면을 전면적 대결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당국, 정확히 얘기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까? 정말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때문일까?

북한 당국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기폭제로 활용했을 뿐 분노의 진원지는 따로 있다고 본다. 대북 전단 살포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런 정도의 도발로 북한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 최고 지도부의 분노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늘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행동 대 말'의 소모적 국면이 지속되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권력승계이후 과거 북한 지도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북미 대화를 위해 중국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가는 가 하면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는  고위급 참관단을 보내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지원했고,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10만 군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도 제공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여전히 막혀있고, 대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일부 과격 탈북민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대북 전단을 날려보내고, '김정은 사망설'을 유포하는 등 비신사적인 모욕 행위가 연이어 계속되고 있다. 또 미국은 대화를 중단한 채 사드 등 주한 미군 전력을 강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측 입장에서는 '줄 건  다 주고 얻은 것은 없는 잘못된 거래'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9일자 중국신문주간(중국 최대 주간지로 매주 90여만부가 발행돼 중국 각급 기관에 배포)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김정은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경험이 풍부한 북한 최고지도자가 북핵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렸을 때가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해결의 최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에 정신이 쏠려있고, 한국도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어려운 국면이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문재인 정부는 대북 문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진정성은 있으나 틀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담대함이 부족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정성과 상상력, 담대함이라는 3박자를 갖추고 역사적인 6.15선언을 이뤄냈다. 그 당시에도 북미관계는 어려웠고, 남한의 보수세력은 남북 대화를 반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상황에서 현대그룹을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5천억원을 지원하고,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만들어냈다. 국가 예산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은 민간기업을 활용하는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설득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추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개성공단 같은 것이 2개만 더 만들어져도 남북간 전쟁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남북관계는 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이 필요하고 상상력과 담대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결단해야 한다. 우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둘째,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대북 특사를 파견해 북한 지도부와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박지원 전 국회의원이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서둘러야 한다. 넷째, 코로나19와 관련해 북한에 방역용품과 생산설비를 즉각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민관 합동으로 식량과 비료, 의약품 등 인도적 대북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결코 일희일비 해서는 않된다. 원칙과 진정성을 갖고 틀을 넘어서는 담대함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준 '남북관계 성공의 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2000년대 방문한 평양에서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에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5차례 방북해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했다.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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