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사망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소환하고 있다. 인종차별뿐이 아니다. 근원적인 문제로 건국 이전의 원주민에 대한 침략과 약탈과 살인과 전염병의 살포와 강제노역,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냥과 노예화, 노예선, 노예무역, 플랜테이션 농장 경영과 노예 착취 등등의 인류사에 남을 죄악들을 불러낸다. 주기율표의 같은 주기의 원소처럼 줄줄이 딸려온다.

 ‘미국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자연 소환될 수밖에 없다.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미국 곳곳의 시위대는 미국 곳곳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에 물리적 모욕을 가하거나 위치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 6월10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은 핏빛 페인트로 도색되었고 불이 붙었고 호수에 던져졌다. 같은 날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의사당 앞 시위대는 동상의 목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려 마스크를 끼고 발로 짓밟았다. 같은 날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서는 시민들이 간밤에 목이 달아나 목이 없는 콜럼버스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 경향신문 2020년 6월 12일자 16면(국제)
▲ 경향신문 2020년 6월 12일자 16면(국제)

‘뉴월드’라고 불리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영웅이 된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가 사후 500여년이 되는 지금 이 같은 봉변을 당하는 것은 그가 십자가를 내세우며 황금을 쫓아 평화의 땅을 침략했고, 주인이 엄연한 그 땅을 약탈했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사람’으로 여기며 환대하던 원주민을 배신하고 학살했던 그 많은 죄악들이 너무나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죄악은 미국의 역사가 그토록 왜곡하고 숨기고 미화하여 영웅 신화로 옹립해도 속죄되지는 않았다.

 콜럼버스 동상에 대한 훼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원주민의 후손들은 약 30년 전, 지배층이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운운하던 1991년 10월14일 유니언 역 앞에서 콜럼버스 동상에 빨간색 페인트를 뿌리고 ‘500년의 대량학살’이란 문구를 붉게 남겼다. 500주년이 되던 이듬해 원주민 후손들은 그 동상에 실제로 ‘피’를 쏟아 부었다. 학살당한 선조들의 희생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 ‘피’는 역사의 재평가를 위한 한 알의 ‘씨’가 되어 묻히고 싹을 틔운 것 같다.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곳곳에서 콜럼버스들을 겨냥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역사만큼 자국민에게 멘탈 붕괴를 초래하는 역사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둔갑시켜 앞세우며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전쟁을 통해 쟁취한 나라라고 자부심과 애국심을 강조하면서도 그들 유럽도래 WASP중심으로 기술했다. 또한 유리한 부분만 적용하고 불리한 부분은 삭제했다. 원주민 선조의 한이나 아프리카계 선조의 한은 제외했다. 백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은 서술하고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은 배제했다. 전체 통합적 국민적 배려는 찾기 어렵다. 원주민의 후손에게 용서를 구한바 없고, 아프리카계 후손에게 용서를 구한바 없는 것 같다. 반성이나 성찰이 없는 그들만의 장밋빛 약속의 땅에 대한 찬송은 그들의 젊은이들에게도 재미없고 지루할 뿐이었다. 아프리카계, 원주민, 유색인이 이 같은 역사에 무슨 흥미를 가질 것인가. 

 우리도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거의 동경시하는 교육을 받은 터라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신대륙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 여겼다. 그런데 신대륙 발견, 지리적 발견과 같은 제국주의적인 프레임 외에도 콜럼버스가 많은 악행을 저질렀음을 알게 됐다. 1495년 노예사냥에 나서 순진무구한 원주민 아라와크족 남녀· 어린이 1,500명을 스페인인들과 개들이 지키고 있는 우리 안으로 몰아넣은 뒤 500명을 골라 배에 실었다. 가톨릭신자인 콜럼버스는 훗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를 계속 잡아 보냅시다.”(하워드 진 지음, <미국민중사>)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가 죽을 위기에 있을 때 수차 구해준 원주민들에게 그는 은혜를 갚는다며 유력자와 귀족들 3천여명을 만찬에 초대해 몇 채의 가옥에 집합시킨 뒤 불을 놓아 태워 죽였다.’(조찬선 목사 지음 <기독교 죄악사>)는 것이다. 그의 죄악 등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교과서에 실린 ‘콜럼버스의 달걀’을 통해 발상의 전환의 귀감으로 삼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법을 배울 따름이다. 요즘도 어떤 글에는 군데군데 그의 달걀이 알기 쉬운 예로 등장한다.

 콜럼버스와 동시대에 콜럼버스와 같은 약탈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스페인인들은 그때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중 ‘라스 카사스’라는 사람은 모험가에서 농장소유주가 된 후 원주민들을 풀어주고 신부가 되어 원주민들에 대한 인간적 대접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콜럼버스의 노예무역에 대해 “신과 인간에 반대하여 행해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의 하나”라고 분노했다.(제임스 로웬 지음,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대세가 아니었고 수적으로 미미했다.
 애초에 인종차별주의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같은 사상이었다. 미국은 노예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출발하였다. 흑인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었다. 1858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링컨에 맞서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라스’는 “우리의 정부는 백인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정부는 백인의, 백인의 이익을 위해, 백인이 다스리는 행정부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노골적으로 설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도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채택할 이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플로이드의 사망은 인종차별주의 폐기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콜럼버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위해 동상의 끝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미국에 콜럼버스의 동상도 많고 기념관도 많고 지명도 많은 데에 놀랐지만, 이제 미국도 더 이상 있는 사실을 왜곡과 미화를 하지 말고, 그대로 솔직하게 객관적 잣대로 평가하며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바로쓰기’를 착수해야 할 것 같다. 이미 국민의 수준은 ‘콜럼버스 데이’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 Day)’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유영철 칼럼 24]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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