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전 남편 살인사건 계획적 범죄 인정...청주 살인은 간접증거 한계 ‘미제로 남아’

 

검찰은 고유정(38)을 연쇄 살인자로 지목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부모와 한 집에서 잠을 자다 숨진 의붓아들의 한 맺힌 죽음은 끝내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살인 및 사체손괴, 은닉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고유정의 항소심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항소를 14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장장 1시간10분에 걸쳐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며 항소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공판검사와 동석한 수사검사는 재판 내내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를 주시했다.

머리빗 모양의 물건을 왼쪽 상의에 꽂고 등장한 고유정은 시종일관 재판부를 바라보며 단 한번도 방청석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고유정은 2019년 5월25일 밤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전 남편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하고 완도행 여객선과 경기도 김포에서 사체를 은닉한 혐의를 받아 왔다.

재판과정에서 고유정은 살인과 사체 은닉 혐의는 인정했다. 다만 펜션에서 수박을 먹기 위해 준비하던 중 전 남편의 강압적 성관계 요구에 대응하다 발생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고유정이 이혼과 양육과정에서 생긴 불만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이 제시한 졸피뎀 등 중요 증거에 대한 증명력을 대부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해자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이 검출된 점,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한 사정, 범행 후 성폭행 시도로 위장한 정황 등을 이유로 고유정의 계획적 범죄로 판단했다.

의붓아들 살인 혐의에 대한 판단도 1심과 같았다. 검찰은 1심 판결이 대단히 비논리적이라며 법정에서 프레젠테이션(PPT)까지 하며 재판부 설득에 나섰지만 간접증거의 한계에 부딪쳤다.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이전인 2019년 3월1일 밤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현 남편 홍모(39)씨의 친자인 의붓아들(당시 6세)을 침대에서 몸으로 강하게 눌러 질식사 시킨 혐의를 받아왔다.

재판과정에서 고유정은 자신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며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오히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다른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현 남편을 겨냥했다.

검찰은 2차례 유산으로 힘들어하던 고유정이 범행 직전 현 남편에게 수면제 성분의 독세핀을 먹이고 잠결에 아이의 목을 눌러 살해한 것처럼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검찰이 이를 스모킹 건으로 제시했지만 정작 직접증거는 없었다. 검찰은 고유정이 망상과 피해의식 속에서 의붓아들을 참혹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 남편에게 수면유도제 성분이 든 차를 마시게 한 점이 증명돼야 한다. 피고인이 아니라 제3자 사망에 대해 배제할 수 있는지 등을 추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까지 고유정의 현 남편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방청석에 있던 당사자는 울분을 참지 못한 듯 재판 도중 법정을 빠져 나갔다.

재판부는 “고의적 범행 여부를 확실하게 할 수 없으면 무죄를 추정하는 것이 헌법상 취지다. 직접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대법원 법리”라며 항소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전 남편에 대한 범행은 중대한 생명 침해이자 범행 방식도 잔인하다”며 “피해자 유족의 고통 등을 고려해 원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며 양형 이유도 밝혔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범죄 행위에 사용된 그랜저 차량과 톱 등에 대한 몰수형을 추가하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심의 형을 유지시켰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