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당근 재배 정혜숙 씨 "30년 농사 지으면서 올해 같은 날씨는 처음"

▲ 쑥대밭으로 변한 정혜숙 씨의 당근밭(아래)과 더덕밭(위).
▲ 쑥대밭으로 변한 정혜숙 씨의 당근밭(아래)과 더덕밭(위).
▲ 지난 밤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 내린 우박과 강풍, 폭우로 인해 쓸려 내려온 흙더미가 차단막에 걸려 있다.
▲ 지난 밤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 내린 우박과 강풍, 폭우로 인해 쓸려 내려온 흙더미가 차단막에 걸려 있다.

제주시 구좌읍에 거주하는 정혜숙(60.여)씨 지난 밤 오후 9시쯤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500원짜리 동전만한 우박이 그저 신기했다.

이튿날 오전 정씨는 전날 느꼈던 놀라운 감정을 잊어버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허탈감만 가득했다. 간밤에 내린 우박과 강풍으로 인해 애지중지 키웠던 농작물이 쑥대밭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3000평 규모의 밭.

멀리서 보니 예초작업이 끝난 뒤 베어낸 풀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것 같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가지런히 누워있는 풀은 당근 이파리였다.

지난 밤 내린 우박과 강풍, 폭우로 인해 이파리가 꺾여 버린 것.

제주지방기상청 등에 따르면 지난 30일 오후 9시께 제주시 구좌읍과 우도면 일부 지역에 10여분간 지름 2cm 정도의 우박이 쏟아졌다.

▲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당근밭. 드문드문 붉은 당근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당근밭. 드문드문 붉은 당근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당근밭.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검붉은 당근밭에 어지럽게 당근 이파리가 널브러져 있다.
▲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당근밭.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검붉은 당근밭에 어지럽게 당근 이파리가 널브러져 있다.

곳곳에서 붉은색의 물체도 보였다. 물체의 정체는 성인 남성 손가락만한 크기의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당근이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3000평 규모의 더덕 밭도 상황도 비슷했다. 이파리는 전부 꺾여버렸고, 몇몇 더덕들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밭 반대편에는 배수로를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우박과 강풍, 빗물에 당근들이 휩쓸려 배수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밭과 배수로 사이에 있는 3m 정도의 농로를 가로질러 떠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애지중지 밭을 일궈온 정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 폐허로 변한 당근밭을 돌아보고 있는 정혜숙씨. 정 씨는 30여년 농사 짓는 동안 올해처럼 장마와 태풍, 우박까지 이어지는 이상기후는 처음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 폐허로 변한 당근밭을 돌아보고 있는 정혜숙씨. 정 씨는 30여년 농사 짓는 동안 올해처럼 장마와 태풍, 우박까지 이어지는 이상기후는 처음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정씨는 “어제(30일)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놀랍다는 생각을 들었을 뿐 밭을 신경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오늘(1일) 아침 쑥대밭으로 변한 밭을 보니 허탈감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올해 당근 파종을 두 번했다. 무더운 여름 파종을 했지만, 날이 가물어 밭을 갈아엎고 재파종 했다.

그는 “3만평 정도 농사를 짓는데, 태풍과 가을장마가 계속되면서 병해충 예방을 위해 농약값 등 비용이 평년보다 더 들었다. 정말 애지중지 키워왔다. 하지만, 이번 우박으로 인해 3만평 규모의 밭 모두 피해를 입었다. 당근과 더덕 등 농작물들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씨는 “진짜 망했다. 대체할 작물도 없다. 태풍 링링, 가을장마, 태풍 타파까지 견뎌냈는데, 갑자기 쏟아진 우박에 농사를 망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빚더미에 앉아있는데,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농사를 30년 가까이 지으면서 올해처럼 태풍과 가을장마, 우박까지 내리는 것은 처음 본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25일까지 제주시에 282.2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지난해 14.5mm보다 20배 가까이 많으며, 평년(36.7mm)보다도 8배 정도 많다.

연이은 태풍피해와 가을장마, 우박까지 내리면서 농작물 뿐만 아니라 제주 농민들의 마음도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다.

▲ 지난 밤 제주에 내린 우박. 500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거주하는 [제주의소리] 독자 정의준씨 제공.
▲ 지난 밤 제주에 내린 우박. 500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거주하는 [제주의소리] 독자 정의준씨 제공.
▲ 예초 작업이 끝난 뒤 베어낸 풀을 가지런히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간밤에 내린 우박과 호우로 줄기가 꺾여 드러누워 버린 더덕.
▲ 예초 작업이 끝난 뒤 베어낸 풀을 가지런히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간밤에 내린 우박과 호우로 줄기가 꺾여 드러누워 버린 더덕.
▲ 꺽이고, 뿌리까지 드러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더덕.
▲ 꺽이고, 뿌리까지 드러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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