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칼잡이 윤석열'이 '정치인 윤석열'로 '정치의 강'을 건넜다. 명예로운 검사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27년의 공직의 마지막은 회한의 중도하차였다.

정치를 흔히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드라마가 그랬고, 꿈에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드라마도 '가능성의 예술'이 빚어낸 결과이다.

한때는 정권의 미움을 받기도 했고, 한때는 정권의 총아(寵兒)이기도 했던 윤석열이 이제는 자신의 정치를 하게 될 '운명'인가 보다. 그의 퇴임을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은 그가 이미 스타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를 정치검사로 비난하는 쪽도, 헌법수호자로 칭송하는 쪽도 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 뿐이다.

그는 늘 자신을 정무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의 사퇴 드라마를 보면 매우 정치적이고, 수에 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선 사퇴의 시기를 절묘하게 골랐다. 여당이 중대범죄수사청 추진에 속도를 내는 시점을 택해 순교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시점을 찾아 사표를 던졌다.

사표를 내기 전인 지난 3일 그는 대구를 방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구고검ㆍ지검을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정치적 상실감이 큰 지역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영접을 받고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그는 이미 야권 대선주자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출정식'이었다.

이제 윤석열은 차기 대선의 '태풍의 눈'이 되었다. 제 1야당인 국민의힘이 경쟁력있는 후보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야권 지지층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미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야당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의 대선 무대 등장은 이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의 전격적인 등장은 대선을 앞둔 정치판을 크게 요동치게 할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이다.

우선 오는 4월 7일 서울ㆍ부산시장 재보선에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그의 출마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정리된 만큼 야권 후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떤 수준으로 4.7 재보선에 개입할 지는 현 단계에서 예단하기 어려우나, 야권 후보들이 그의 후광을 얻기 위해 몰려갈 것은 확실하다.

그는 이제 반문재인의 상징이 되었다. 야권의 어느 정치인도 갖지 못한 정치적 자산을 지난 1년 반 남짓의 시간 동안 축적한 것이다. 시중에는 그를 '추미애가 만든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가만히 두었으면 평범한 검사에 불과했는 데, 때려서 몸집을 키웠다는 뜻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가 온건 보수와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군 가운데 영남 득표력과 중도 확장성이 상대적으로 큰 주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윤석열의 등판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쪽은 아무래도 TK출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드라마틱한 정치권 등판에도 불구하고 관료 출신인 그에게 쏠리는 불안한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건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경우 처럼 반짝 스타로 떴다가 사라질 것이라는 시선이 그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견디지 못하고 낙마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종필ㆍ이회창ㆍ이인제ㆍ안희정ㆍ반기문에 이르기 까지 좌절로 이어졌던 '충청 대망론'은 그의 또다른 정치적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낱 포말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그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단기필마(單騎匹馬)로 기성 정치판을 뒤흔들고 청와대에 입성할 것인지, 아니면 고건과 반기문이 갔던 실패의 길을 걸을 것인지, 이제 그 선택은 깨어있는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이제 그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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