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이게 우리가 기대했던 '촛불정부'의 모습이란 말인가? 밀려오는 자괴감과 참담함에 가슴이 아프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를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는 다시는 이런 꼴을 보지 않을 줄 알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집단 땅투기 사건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의 뇌관이 되었다. '영끌'을 해도 수도권에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는 2030 청년세대들은 분노와 절망에 내몰리고 있다. 기대했던 공정과 정의는 없었고, 대신 공직자들의 집단 땅투기만 있었다.

이 절망적인 사태의 정점에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다. 그가 LH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직원들은 공공연하게 집단 땅투기를 했다. 땅을 쪼개고 비싼 묘목을 심는 행위는 전문 투기꾼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변 장관은 국민의 들끓는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헛된 자리 욕심을 부리고 있다.

변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부터 논란이 된 인물이다. 그는 과거 '구의역 사고'에 대해 언급하면서 "위탁 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될 수 있었다"고 말해 유족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사는 등 여러 차례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언동을 해서 함량미달 논란이 일었던 인물이다.

부동산 폭등으로 수세에 몰린 청와대가 주택공급 확대를 이유로 그의 임명을 강행했으나, 결국 자충수가 되었다.

변 장관은 지난 9일 국토위에 참석해 집단 땅투기 사건에 대해 "일부의 일탈"이라고 발언해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또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투자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땅투기 직원들을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LH 직원들이 온라인상에서 "꼬우면 니들도 이직해라" "왜 우리 한테만 지랄하는지 모르겠다" 운운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만 하다. 이런 자들이 공직에 버젓이 앉아있는 것이 과연 '촛불정부'란 말인가?

적어도 '촛불정부'를 내세운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변창흠 장관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

그는 우선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훼손해 문재인 정부의 국정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가 장관으로 있는 한 아무리 공정을 외쳐도 구두선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사장 재임 중 직원들이 집단 땅투기를 벌인 것 만으로도 그는 물러나야 한다.

그가 장관직에 계속 머무르면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도 위태롭게 될 것이다. 이미 야권은 땅투기 사건과 변창흠 퇴진을 보궐선거의 최대 이슈로 몰아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지난 주말 LH 사건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창흠 장관에 대한 경질의 시기를 놓치면 여권은 '분노의 쓰나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민심의 산불은 났고 바람까지 불고 있다. 또다시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여 '공정한 대한민국'을 위한 촛불을 들지도 모른다. 변창흠 장관을 즉각 경질하고 투기 공직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하는 것 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