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4.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집단 땅투기 사건'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통상 재ㆍ보선은 투표율이 낮아 조직이 강한 여권 후보쪽에 승산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 선거의 흐름은 여권의 조직선거가 제대로 먹히기 힘든 태풍급 대형 악재가 돌출돼 선거 판세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현재의 흐름을 보면 이번 보궐선거의 최대 이슈는 'LH 땅투기 사건'이 될 전망이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야권 후보 단일화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LH 땅투기 사건은 갈수록 불길이 번져 태풍급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부동산과 공정의 문제, 공직 부패 문제 등이 뒤얽힌 이슈인 데다, 여권의 대응방식이 미숙하고 미흡해 중도와 보수층의 심판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은 변창흠 국토부장관 사퇴와 1차 전수조사 발표, 특검 카드로 상황이 반전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여론흐름은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모양새이다.

변창흠 장관의 시한부 경질은 '2ㆍ4 공급대책'을 고려한 청와대의 고육지책이었으나, 즉각 경질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변 장관이 각종 부적절한 언동으로 '국민 밉상'이 되는 바람에 그가 TV 뉴스에 나올 때마다 표 깍아먹는 소리가 들린다는 푸념이 여당 후보 캠프에서 나올 지경이다.

아울러 투기의심자가 20명이라는 1차 전수조사 결과의 발표는 안하느니만도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시민단체에서 고발한 13명에서 고작 7명이 추가된 인원을 밝혀낸 것을 두고 시중 여론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인 반응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제안한 특검 카드도 여론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검법을 만들고 특검 임명과 사무실 마련 등에 수개월이 걸리는 데 그 사이 증거인멸이 이뤄질 것이라는 비판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패가망신' 수준의 부동산 투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이 마저도 선거 전까지 가시적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의 범죄와의 전쟁은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폭력배를 잡아들여 TV뉴스에 포승줄로 굴비 엮듯이 보여줄 수 있었으나, 부동산 투기 범죄는 경제 범죄의 특성상 단기 성과를 내기도 어렵고 TV뉴스용 그림을 연출하기도 여의치 않다.

이번 부동산 투기 문제는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로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사건의 실체 보다는 국민 여론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게이트로 비화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정의 문제와 공직부패 관리 능력의 부실이 결합된 사안이어서 단기 국면 전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친여 성향이던 2030 세대가 '영털'(영혼까지 털렸다)이라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고, 300여만명이 가입한 취업 준비 사이트에는 "LH 공기업 비리, 정의ㆍ공정ㆍ평등ㆍ기회는 죽었다"는 글이 게시돼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착하고 바르게 살면 바보"라는 청년들의 절규에 대해 정부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중도와 보수, 청년층의 분노한 민심은 선거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에스티아이'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야권 후보들과의 양자대결에서 20% 정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는 윤석열 변수의 문제다. 애초 여권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사퇴 컨벤션 효과가 꺼지면 곧바로 가라앉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것으로 드러난 데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3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가 충청권과 수도권, TK지역에서 선두를 달리는 모습은 거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 지지층을 결집하고,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여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세번째는 야권 후보 단일화이다. 선거 판세가 야권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는 삐걱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여론이 야권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니 오세훈 후보든 안철수 후보든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심지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3자 필승론'까지 나오고 있다.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박영선 후보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대선을 11개월 앞둔 시점의 민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선거이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향방은 대선 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영선 후보가 LH 부동산 투기의 쓰나미를 극복하고 승리하느냐, 아니면 야권 후보가 승리하느냐,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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