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 나선 김대중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말의 환란과 IMF 구제금융 신청의 시대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슬로건이었다. 결과는 1032만 6275표를 얻은 DJ가 39만여표 차이로 승리해 역사를 바꾸었다.

이번 대선은 유독 준비되지 않은 후보들이 많다. 국회의원 선거도 오랜동안 공들이고 노력을 해야 하는 데, 대선에서의 준비와 노력은 더 말해 무엇하랴?

준비 안된 후보들이 많으니 대선판이 정책토론 보다 신상털기식 네거티브 공방에 치우쳐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특히 야권 유력후보들의 준비 부족은 실망스러운 수준을 넘어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의 대표 주자는 아무해도 야권의 윤석열ㆍ최재형 후보인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선이란 정치ㆍ외교ㆍ안보ㆍ경제ㆍ문화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정책 역량을 내보여야 하는 선거인데, 엊그제까지 검사와 판사로 지내면서 대선은 꿈도 꾸지 않았던 인사들이니 오죽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벼락치기로 출마해 한분은 일일 망언으로 시끄럽다가 잠행하며 국민앞에 나서는 걸 회피하더니 한분은 계속되는 선거법 위반 시비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 후보들 가운데 가장 준비가 잘 된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인 듯 하다. 그는 지난 2017년 19대 대선 출마 경험과 경기도지사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 정책 시리즈'를 내세워 선거판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이른바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민주당 경선판은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자연히 정책토론도 이재명의 기본정책 시리즈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출마선언을 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어느 정도 준비된 후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기성 정당의 외피를 쓰려고 입당한 윤석열ㆍ최재형과 달리 그는 자신만의 정치비전을 내보였다. 그는 '벤처정당론'을 내세우며 제 3지대 후보를 자임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이 없다"는 그의 단호한 출발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들이 나서게 되면 대선판은 혼탁해진다.

우선 선거가 정책토론 보다 네거티브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준비된 브랜드가 없으니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주된 선거전략이 될 수 밖에 없다.

둘째, 정치공학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나타나게 된다. 정치철학과 정책 브랜드가 없으니 지지율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양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셋째, 책임 정치의 실종이다. 자신만의 정책 브랜드가 있으면 거기에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브랜드가 없으니 책임도 없다.

대선은 갑자기 준비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5천만 국민의 생존과 안위가 달린 선거에 준비되지 않은 후보가 있어선 안된다. 단지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순간적인 인기를 내세워 대선판의 승자가 되기는 힘들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국민은 과거에 대한 심판 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표심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서 국민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을 선택했고, 그는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아직도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2021 미스월드ㆍ유니버스코리아조직위원회 국제조직위원장, 국기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